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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심상찮은 배추 재배] 물통·화단·자투리땅… 뿌리 내릴만한 공간엔 모조리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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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청과
11-11-1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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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화단, 가정집 대문 위, 교회 담벼락 아래, 과수원 배나무 밑에서도 배추가 자라고 있었다. 심지어는 길가에 놓인 화분, 관광호텔 주차장, 기사식당 앞마당, 하천변 체육공원도 배추밭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10월30일과 11월1일 본지 취재팀이 서울을 비롯해 경기 광명·구리·포천 등 수도권지역, 충북·경북지역 일대의 가을배추 재배실태를 취재한 결과 “뿌리를 세울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모조리 배추를 심었다”는 상인들의 입소문을 실감할 수 있었다.
◆ 서울 주택가·학교 화단도 예외 없어=1일 오후 북한산국립공원 무수골 입구인 서울 도봉구 도봉동. 국철 1호선 도봉역에서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하천변에는 대형 화분이나 플라스틱 물통을 이용해 배추를 재배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또 단독주택이 밀집한 골목길로 들어서자 대문 위나 장독대를 아예 텃밭으로 가꿔 배추를 재배하는 집도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정복심 할머니(77)는 “가정집에서 배추를 얼마나 심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화단이 있으면 배추라도 심어야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하천 상류로 조금 더 오르자 도봉초등학교 정문이 보였는데, 이 학교는 담벼락 밑에 조성한 화단에 배추와 무를 재배하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 학교보안관으로 활동한다는 한 남성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화단에서 배추를 관리하고 관찰학습을 하기도 한다”며 “인근에 학교농장이 따로 있는데, 그곳에도 배추가 자라고 있다”고 밝혔다.
학교와 지척에 조성된 대형 주말농장인 무수골농장도 온통 배추로 퍼렇게 덮여 있었다.
◆ 중소도시 아파트 공터도 배추밭 변신=인구 60만의 중소도시인 충북 청주시 금천동의 한 아파트단지. 1일 오전 이 아파트 화단 옆 작은 공터에도 꽃이 아닌 배추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파트뿐만이 아니었다. 상가 옆 계단의 작은 공간에도 도저히 배추를 심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닌데도 흙을 덮은 시멘트 바닥 위에서 배추가 자라고 있었다.
집 근처 공터에 배추 100포기를 재배하고 있다는 김옥금씨(65·청주시 금천동)는 “지난여름 언론에서 김장철 배추값이 올해도 ‘금값’이 될 수 있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마을 주민들이 옥상이며 화단 옆 등을 가리지 않고 틈새 공간만 보이는가 싶으면 배추를 심었다”면서 “외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 김장값이라도 덜어 주려고 11월 중순쯤에 김치를 담글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길게 펼쳐진 청주 인근의 청원 오창지역 논에서도 쉽게 배추를 찾아볼 수 있었다. 널찍한 논 한편에 16.5㎡(5평) 될까 말까 한 자투리땅은 물론 대개 콩을 심었던 논두렁길에도 배추로 가득했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문경온천지구에 있는 골프클럽과 관광호텔의 화단에는 배추가 화초를 대신해 자라고 있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올 가을배추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3% 늘어 김장 성수기(11월 중순~12월 상순) 도매가격(상품 기준)이 한포기당 1,000~1,300원(지난해엔 3,200~3,400원)할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농식품부는 배추값이 최저보장가격 이하로 하락할 경우 일정 물량을 산지에서 폐기하고, 생산자단체와 함께 상품성이 낮은 배추는 출하를 억제키로 하는 등 배추 가격 안정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올 김장철에는 배추값이 정부의 예상보다 훨씬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말이 자주 나온다. 올해는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텃밭과 공터가 배추밭으로 만들어졌고, 일반 가정에서도 화단 등을 이용해 자가 소비용으로 배추 가꾸기에 나선 나머지 배추 생산량은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곳곳에 자가 소비용 재배 수두룩=실제 취재팀은 자가 소비용으로 소량씩 배추를 재배하는 현장을 도시와 농촌지역 가리지 않고 발길 닿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10월31일 오후 서울 중랑구 상봉동 중앙선 망우역 철로변의 단독주택들은 집 앞 공터에 철망을 치고 배추를 재배하고 있었다. 인근의 한 공장은 주차장을 줄여 배추밭을 조성했으며, 중랑숲 인근에는 대형 화분에 배추를 가꾸는 집도 몇곳 있었다.
경기 구리시 사노동의 한 배 과수원은 배나무 밑에 배추와 무를 재배해 수확을 앞두고 있었다. 이 과수원 주인은 “해마다 우리가 먹을 김장용으로 배추 20포기 정도를 심었는데, 올해는 자녀들에게도 김장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100포기를 심었다”고 말했다.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의 왕숙천 둔치와 제방의 자전거길은 농작물 재배가 금지된 곳이지만 군데군데서 커 가는 배추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인근 장승마을 입구 버스정류장 뒤편 인도와 공사장 철망 사이엔 3.3㎡(1평) 남짓한 공간을 비집고 누군가가 배추를 심었고, 남양주시 퇴계원면의 자동차 계량소 앞마당에도 조그만 배추밭이 있었다.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마을은 거의 모든 공터에 배추가 자라고 있었고, 내촌면 소학리 대로변에 있는 기사식당 앞마당에는 먹음직스러운 배추가 손님들을 맞았다. 양주시 고암동 청담천변의 교회는 야트막한 담 밑에 일렬로 배추 10여포기를 심었고, 바로 옆 양돈장은 공간이 부족한 듯 벽돌로 낮게 담을 쌓아 흙을 채워 넣고 배추를 가꾸고 있었다.
평택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국도를 따라 이어진 공사 현장 한편의 버려진 나대지는 물론 무덤 앞과 상가 옆 공터 등엔 여지없이 배추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심지어 차들로 붐비는 버스정류장 옆의 자투리땅도 배추가 차지했다.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를 접한 경기 광명시 지역도 공사 현장의 공터에서부터 민물낚시터 주변 땅까지 사방이 온통 배추밭이었다. 광명에서 수년간 주말농장을 했던 이병렬씨는 “주말농장에서 이맘때쯤 수확할 만한 것은 무와 배추밖에 없다지만 올해는 이웃과 함께 김장을 담그려는 요량으로 배추 포기수가 크게 늘어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 산지 악영향 불보듯 뻔해=전문가들은 자가 소비용으로 생산한 배추가 늘어나면 그만큼 시장에 출하한 배추의 소비량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엔 산지에 영향을 미쳐 배추 가격을 더욱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며 배추 가격 안정대책을 보다 세밀하게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주거지역을 비롯한 도시 근교의 공터, 전국의 주말농장에 온통 배추가 자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재배되는 배추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현재 정부에서 정한 산지폐기 기준가격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고, 물량도 턱없이 모자라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고 꼬집었다.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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